“하루 시작은 새벽 3시 30분. 성경을 읽고 기독교 방송의 음악을 들으며 신문 을 보고 文選도 한다. 다음은 방송대학 강좌로 신학과 사회학을 듣고 6시 30분 에 인왕산에 오른다.”

“새벽 세시에 일어나 성경과 경전을 위시한 독서 원고 쓰는 일 새로운 작품제 작에 몰두하여 새벽기도회 조차 참석 못하는 자신을 뉘우칩니다.”

위와 같이 선생의 일과는 성경 읽는 것과 기독교 방송 듣는 것 그리고 새벽기도 하는 것으로 시작됨을 알 수 있다.
또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주님의 말씀을 글씨로 쓰겠다는 결심을 밝히고 있다.

“나에게는 붓과 먹 그리고 종이로 이 생명 다 할 때까지 주님의 말씀을 많이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려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오직 예수만을 바라보는 見月忘指, 달을 바라보고 손가락으로 하는 일 모두 잊어버리는 생활을 계속 할 것이다.”

「서예회고전을 마치고」라는 글에서는 성경을 쓴 글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토로하기도 하였다.

“개인전 서숙전 국전 등에 출품하였던 내 나름대로의 큰 작품들이 주님을 도리 어 욕되게 하지 아니 하였나! 내 자신의 믿음 내 자신의 행위전체가 어떠하였나! 다시 말해서 언행일치, 내 자신의 신앙인으로서 인격의 결함이 없는가! 나 스스 로의 自責 悔改하는 것이 이번 서예회고전의 본질인 것이다… 그래서 나로서는 주님의 말씀을 서예로 표현해서 대중으로 하여금 다소라도 전도가 되었다는 것 보다 도리어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게 한 나 자신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한 다.”

한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서예가로서 스스로 자책 회개하며 다시 면려를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신앙생활에 대하여 기술한 것이 이루 셀 수도 없다. 다시 글씨 쓰는 처절함을 표로한 두 문장을 옮긴다.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노동정신에 따라 일사불란한 서예 제작에 피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는 집념으로 변함이 없기에 나의 까만 먹으로 쓰여진 서예작품은 붉은 내 피로 쓴 혈서임에 틀림없다.”

“나이가 나이니 만큼 모필 끝에서 먹 글씨가 하얀 화선지에 한자 한자 이루어 질 때 내 혈관에서 나오는 혈서인양 착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글씨 쓰다가 殉 職 하는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기쁘다.”

예수가 보혈로 인류를 구원했듯이 자신의 글씨도 보혈의 결정체로서 사람들에게 희망과 안식을 주기를 갈구하는 내심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상에서 지극히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몇 가지를 발췌하여 신앙과 글씨에 얽힌 체험의 현장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특기할 만한 것은 이다지도 투철한 기독교인이면서도 이차돈의 죽음을 찬양한 시를 비롯하여 祖師들의 법어 법연화경병풍 등 불교에 관한 것은 물론 도교의 경전에 이르는 폭넓은 소재를 작품으로 한 것이라든지 당호를 尋牛室로 쓰는 것 등에서 동양의 유불선을 널리 수용할 뿐 결코 배척하거나 폄하하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法施』라는 불교잡지에 투고도 많이 하였고 특히 그 중의 「손가락만 보고 달은 잊어 버렸다」에서는 “나는 기독교 신자로 신구약전서도 읽고 불교성전 및 여러 경문을 매일 읽고 나름대로 正心 修己 修身의 완전한 사람이 되려고 생각한다.”(1973년 8월호)라고 토로했으며 1977년 9월 호에서는 「인연을 생각하며」의 글에서는 “붓다가 세상에 온 것은 인류에서 생의 비밀을 자각하여 영원한 理想境인「보디」와 열반의 세계를 보이신 것이다. 따라서 불교는 우리의 심성을 밝혀 주고 안락한 열반에 드는 종교다.”라고 하였다. 또 “한 손엔 성서 한손엔 모필 이라는 신념이 있다…나름대로 多讀多書하며 내 철학관 인생관에 맞겨 동양의 유교 仁義사상이나 노장의 玄虛사상과 비교하며 새로운 참뜻을 발견하기를 노력 한다.” 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큰 우리의 스승으로서의 원곡의 면모이며 참된 신앙인의 표본으로서의 원곡인 것이다.

“도산선생이 창설한 흥사단에 입단하여 務實力行 忠義勇敢 自我革新으로 완전 한 인격자가 되는 것이 조국을 위하는 것이요 조국 광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고 중국학생에게 지지 않게 공부하였다.”

또 도산선생으로부터 감화된 정신을 생활신조로 삼고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학시절 상해에서 도산 안창호선생의 교훈으로 성실근면으로 맡은바 자기의 일을 무실역행해야 된다는 믿음과 그 성실근면을 생활신조로 살아왔다…나의 글 씨를 향하여 나가는 정신상태가 좀 더 새로워져야 된다는 이념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나로서는 한국의 한 서예가로서 중국글씨라는 것보다 한국적인 한국 글 씨를 쓰는데 힘써 한국을 상징으로 하는 한국글씨제작에 힘써왔다.”

원곡의 국수주의적인 면과 애국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인 것이다.
문집 속에서 나라사랑에 관해서 적지 않게 언급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라사랑이란 넓게 크게 보다는 작게 쉬운 일부터 내가 먼저 성실 근면 실천 躬行이 앞서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스스로도 “나는 애국자인가? 내 가슴에 손을 대고 ?想해 본다.”고 적고 있다. 뿐만 아니라 늘 이 민족의 빛과 참다운 애국자가 되자고 호소 역설하고 있다.

“우리는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예술방면에 긍정적인 안목으로 이 나라 민 족의 빛이 되자. 그 빛은 작은 빛이 모여서 큰 빛이 되는 것이다… 도산 선생 말 씀과 같이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正義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진리 정의 거짓이 없는 너와 내가 되자… 내 겨레 내 나라를 위한 헌신은 내가 먼저라는 표어로 참다운 애국자가 되어야 하겠다.”

나라사랑을 평생의 신조로 하며 한 점 부끄럼 없이 궁행 실천해 왔음이 들어난다. 따라서 당당하며 자신 있으면서도 완곡한 어조로 후진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일중 김충현은 1974년 <원곡 김기승 회고전>에 부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원곡을 서예가로만 안다. 그렇다면 이것은 원곡을 잘 아는 것 이 아니다. 그는 사상가요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자이기도 하다.…원곡의 생애에 있어서 그 출발도 순수하였지만 자기의 의지가 또한 올발라 매국 반역도 하였던 세태속의 청년으로서 능히 爲國 爲民한 애국의 길을 걸었다.”

이상의 몇 마디의 문장 속에서 원곡의 일관된 애국의 삶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또한 서예가로서 글씨에 신명을 다하는 것을 나라사랑의 일면으로 여겨왔음을 간파할 수 있다. 원곡은 일찍이 “하늘에는 별 땅에는 꽃 사람에게는 사랑 그 사랑의 결실이 가정이요 가정의 집합이 국가민족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언제나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슴에 늘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씨를 쓰는 사람은 먼저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品 格 書格 格思 格物 格範 등 자격을 구비하여야 한다.…서예를 천직으로 삼고 있는 나는 반성을 거듭 眞 善 美의 인격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글씨는 그 사람 의 人品 人格 行動에 좌우된다고 본다. 내가 모필을 들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서 그 무슨 유익함을 주었나? 자기 전문 분야에서 대표자격이 되는가를 스스로 自問해 본다.”

인격이 갖추어지지 못한 글씨는 한갓 붓장난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서울중학교 『慶熙誌』에 투고한 글에서는 또 다른 차원에서 글씨사랑의 마음을 가르치고 있다.

“글씨가 잘 되고 못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내가 부드러운 마음씨를 가졌느냐가 문제입니다. 서예에는 네 가지의 부드러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처 음이 내 마음의 부드러움이요 둘째는 붓의 부드러움이요 다음은 먹의 부드러움 이요 마지막으로 종이의 부드러움입니다. 고로 서예는 부드러움의 종합인 것 입 니다. 늘 종이와 벼루 먹을 앞에 놓고 붓을 들면 우선 내 마음이 부드러운가 반성해 봅니다. 이때의 마음가짐을 예배 보러 교회에 나갈 때나 佛堂에 坐定하 여 참선할 때와 같은 것입니다.”

글씨사랑으로 인한 柔軟의 미학을 체득한 결과라고 보여 지며 ‘바람자니 떨어진 꽃 한가하다
(風定落花閒)’는 어느 선사의 오도송의 한 구절을 접하는 것 같다.
더 나아가서 글씨사랑은 삼라만상을 바라보는 관조의 세계에 접근하고 있음도 나타난다.

“나는 가을 밤 초승달의 半球型인 그 선을 아끼고… 여름 하늘에 느닷없이 검 은 구름이 바람에 쫓기다가 주먹 같은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우지끈 뇌성 벽력 과 아울러 번개가 번쩍하는 그 힘찬 빛의 선을 좋아 한다… 오늘 활짝 핀 꽃은 그것으로 마지막이며 가을 달 서산의 낙조도 그것으로 마지막인 것이다. 그러나 내 손으로 쓰여 진 글씨라는 꽃송이는 영원하다.”

?丁이 소아닌게 없다고 한 이후 온전한 소가 없었던 것처럼 物我가 해소된 경지 속에서 삼라만상에서 받은 영감을 가지고 한 송이의 꽃으로 승화 시킨 領悟의 환희 같은 心相을 느끼게 한다.
원곡의 글씨사랑은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논어에서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好之者不好樂之者)한 것같이 이미 游於藝의 경지 또는 逍遙의 경지를 가늠하게 한다. 일찍이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모필」을 표방했다고 했거니와 끊임없는 글씨사랑은 자신을 지키는 버팀목이었고 끊임없이 남에게 전파해야 할 사명감이었으며 또 간단없는 성찰로 마침내 글씨의 化境에서 노닐고자 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모든 글씨의 꽃을 하늘에 영광 돌리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늘 감사의 계속이다. 첫째 건강한 것 둘째 信仰의 삶 셋째 書藝의 生活 化다. ‘人生은 짧고 藝術은 길다’고 하지만 나는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나에게는 인생도 길고 예술도 길다. 그러나 나는 늘 허탈감이 감돈다. 내놓을것이 무엇인 가! 서예가라고? 幾千字 漢字 書體를 안다고? 漢書幾百卷 읽었다고? 中國서 大 學을 나와서 중국어를 한다고? 아니면 일본어를 안다고? 아니면 여러 大學에 근 20년을 출강했다고? 아니면 先賢들의 碑文을 많이 썼다고? 아니면 近千페이지 의 冊서너권을 出刊했다고 해서…? 버젓이 내놓을 것이 없다. …그러나 글씨 쓰 다가 殉職하는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기쁘다.”

감사와 기쁨 가운데 반성과 회한으로 점철되어 있는 삶, 이는 끊임없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진일보의 발판에서 언제나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의 반증인 것이다.
이 밖에도 그 동안 치루 어진 전무후무한 기록적인 34회의 개인전의 서문을 두루 살펴보면 구구절절 그 겸허한 모습이 눈물겨울 정도이다.

“근 30년간 공부하고 어렵다는 사실을 날이 가고 해가 더 할수록 自認하면서 붓을 꺾고 종이를 찢고 단념하고자 하기를 몇 번이나 하였습니다.”(제1회 개인 전)

“갈던 먹을 멈추고 쓰던 붓을 던져버리기를 여러 번 하였습니다. 그러나 설레 는 내 자신을 달래면서…부지런히 매진하노라면 神韻이 생동하는 서예의 수확도 있으려니 희망도 붙여봅니다.”(제6회 개인전)

“개인전을 거듭할수록 붓끝이 무디어 아름다움에서 朴素로 거칠어 가는 것 같 습니다. 이 거칠음을 다시 갈아서 玉으로 찾으려는 심정입니다.”(제10회 개인전)

“꽃피는 봄철 보다 결실의 가을을 기다리는 심정이기도 합니다.…격려하여 주 시면 얼마든지 고쳐서 많은 샘물구실을 하겠습니다. 인간 본질의 정화가 서예정 신이요 애국애족 인류애의 핵심이라고 믿고 싶습니다.”(제15회 개인전)

“고희전을 갖고자 하니 마음이 무겁기만 해서 무딘 붓이 더 아니 나간다. 허나 만용을 내서 塗墨한 셈인데 만족의 미소라기보다 失意의 苦笑를 금치 못한다.” (회고전)

“오직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이 완전하고 충만하다고 하지만 오직 주님께서 오 심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餘白 餘韻이 나의 마음에 남아있어 생명의 글씨를 血 로써 點綴하려는 心情이다.”(제22회 개인전)

이상에서 보았듯이 원곡은 학덕 인품 예술 신앙 등 어느 면에도 원만 구족하지 않음이 없지만 늘 다 채우지 못한, 즉 추사선생이 말한 9999分까지 이르렀다고 해도 그 나머지 1分을 성취하기 가장 어렵다고 한 그 경지를 채우고자 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신 앞의 작은 인간으로서의 절규가 곧 겸허한 자세로 일관된 것이며 그 결과는 곧 謙光의 모습으로 승화된 것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