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생은 粉板에 大字쓰기로 시작하고 소년생 부터는 粉帖에 作詩겸 小字쓰기 를 한다. …나도 粉板에 千字文을 큰 글씨로 쓰면서 글씨공부를 시작하였다.… 집에 家藏하였던 추사필적인 「靑蓮詩境」과 朱子의 글씨 탁본 병풍 등 좋은 글씨를 일찍이 볼 수 있었다. 특히 추사가 族門의 출신이라는데 친근감을 느꼈 었다. 그러나 당시에 장차 書家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두 번째는 1932년 中國公學大學部 경제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고향에서 형(基文)을 쫓아 일 년간 정식으로 글씨 공부를 한 것이다.
당시 스승은 그 지방에서 명필로 이름난 山庭 辛翊善이었다. 당시의 회고를 다시 초록한다.

“처음에는 大字쓰기를 공부하였다. 白鷺紙(갱지) 반절에 두세 자씩 썼는데 하 루 종일 쓰면 그 종이가 100장은 족히 되어 큰 마당을 꽉 채웠다. 형님이 筆才 도 있었고 나보다 먼저 정식으로 수학 중 이었지만 내가 더 잘 쓰려는 경쟁심 으로 열심히 공부 하였다.”

다만 이 당시에 무슨 書帖이나 무슨 體를 주로 공부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 있지 않아 당시의 서예 풍기를 짚어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세 번째는 해방 후에 素筌 孫在馨에게 사사한 것이다.
해방 직전 1934년에는 조선일보 군산지국장으로 사회에 진출하였고 이때에도 서첩을 臨摹하며 글씨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독립운동에 참가한 경력으로 일인의 주목을 받아 다시 상해로가 藥種商을 경영하면서 서예와 승마로 심신을 달랬다. 그 사이에 1939년 조선서도진흥회에서 주최한 전람회에서 2등상을 받은 경력이 있으며 1942년에는 중일문화협회에서 주최한 전중국서도전에서 입선하였다. 해방 후 귀국하여 다시 제약업의 대표로 종사하면서 사옥일부에 서실을 만들어 놓고 틈틈이 글씨를 공부하였다. 이 와중에 1936년 28세 때 소전을 찾아 스승으로 모심으로써 새로운 경계를 접하게 되었고 따라서 전문적인 서예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5세(千字文 · 童蒙先習)
6세(通鑑三卷 · 小學)
7세(孝經 · 大學)
8세(孟子)
9세(論語 · 古文眞寶)
10세(詩傳 · 書簡文)
11세(書傳)

이밖에 每年 夏季의 임시적 納凉敎課로 唐詩를 競演하듯이 朗誦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신학문을 배우기 이전 14세까지 한문만 배웠다고 술회한 것으로 보면 10년이 넘도록 총명한 머리로 한학을 익혔으므로 당시에 이미 文理가 났을 것으로 미루어 보기에 충분하다. 이는 보통사람보다 2~3년은 빠른 수학으로서 그 지구력과 천재성이 일찍이 드러난 셈이다.
1922년 14세 때에 신학문을 배워야겠다는 일념으로 왜정의 교육을 반대하던 조부의 완강함을 따돌리고 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한학을 공부했던 관계로 2학년에 편입하였고 다음해에 월반하여 4학년이 되었고 17세때 3년만에 6년 과정을 모두 마치고 그해 봄 公州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에 일인교사를 배척하는 동맹휴업의 주동학생으로 지목되어 우여곡절을 거쳐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전학 처분이 내려져 여기서 다시 3년을 공부하고 마침내 청운의 뜻을 품고 만주의 奉天文會高級中學으로 다시 전학하여 1928(20세)에 졸업하였다. 이때 봉천중학은 감리교에서 경영하던 학교였는데 여기서 自永燁 牧師에게 감화 받고 기독교에 입문하였다. 이후 대학입학이나 도산 안창호선생을 만나는 것도 백목사의 배려가 결정적이었다. 1928년 上海吳?砲臺灣上海公學大學部의 經濟科에 입학하여 23세 때 졸업하였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원곡은 5세부터 23세에 이르기까지 18년 동안 신구학문을 겸수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이후 논문과 숱한 수필 그리고 저서의 집필은 물론 서예의 깊숙한 이론을 폭넓게 볼 수 있는 역량을 탄탄하게 다진 것이다.

“서예에 있어서는 오늘날 까지도 글씨를 쓰는 명필은 있으나 학문적으로 체계 를 세워서 일목요연하도록 과거와 현대의 서예를 연구 고증 비판한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을 유감으로만 생각할 뿐이 아니라 실로 부끄러운 일이라 고 아니할 수 없다… 그 주요한 내용을 본다면 삼국 신라 고려시대에서부터 시 작하여 近朝시대에까지 일목요연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고 여기 다시 서예후진 에게 큰 참고가 되게 하기 위하여 중국서예사를 상고시대부터 근세까지 저술한 것은 서예연구에 있어서 크나큰 자료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篇末에 자신의 연 구와 文選의 短評 講話와 名筆傳 隋想錄을 編取하여 前人未踏의 새로운 경지 를 개척하여 斯道연구에 훌륭한 燈臺가 된 것은 진실로 경하할 일이라 하겠다.”

이 책에 대한 소개는 물론 당시 우리 서단의 이론 부재의 현주소를 잘 표현하고 있다.
또 스승인 소전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것은 우리 서예계 뿐만 아니라 文化韓國의 空白 하나를 든든히 메워 준 貢獻이라 말 할 수 있다.”

이어서 원곡은 서문에서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현대 과학의 거센 물결과 예술의 抽象騷動을 경원시하며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초연히 사랑과 성령의 감화를 받는 서예를 배우는데 있어서 서예의 기법 과 한국서예사 및 중국서예사를 알아야 된다는 것을 느끼고 해방 후 20년간 틈틈이 써 모은 원고 중에서 약 4천매를 추려 『韓國書藝史』라는 명칭으로 출 판하게 되었다.”

그 오랜 세월의 각고와 서예사랑 그리고 무지몽매한 후학을 생각하는 후한 先知者의 마음이 절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당시 황무지와도 같은 우리 서단 풍토에 이론의 빈곤에 대한 갈구를 채워주기 위하여 첫 호미를 든 셈이다.
『新稿韓國書藝史』에 대해서 원곡은 서문에서 짧게 언급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10년전인 1966년에 간략한 『한국서예사』를 간행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문자 그대로 略史이어서 언젠가는 완전한 集大成을 하여 斯界에 이바지 하려는 뜻을 항상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서예사』에서 우리서예사 부분은 255쪽이어서 이번 新稿에 비하면 1/4에 지나지 못하였다…이번 신고는 최신의 자료까지 총 망라하여 저자의 서예관으로 되도록 상세히 기술하려고 힘썼다. 그 리하여 원고로 4,600장에 달하였다.”

이 책은 전의 것을 일신하여「中國書藝史」 「韓國 金石學 大觀」「서체의 역사와 기법」등 네 편의 논문, 그리고 문집에 해당하는 「敎養」「短評 講話」「隨想」등을 모두 삭제하였다. 삼국시대로부터 현대의 서예에 이르기까지 17章에 걸쳐 풍부한 자료를 통하여 해박한 지식으로 광범위하게 갈파하고 있다. 특히「阮堂金正喜의 書學과 生涯」의 70여 쪽에 달하는 논문은 백미이다. 이 책은 지금도 한국서예사 연구에 지침이요 지남이 되는 귀중한 자료로 크게 활용되고 있다.
『原谷書文集』은 두 번째 『新稿韓國書藝史』에서 삭제하였던 내용과 이후에 쓴 수필 83편을 더하고 앞 부문에 그 동안의 작품제작 경로의 흔적과 自用印存 그리고 추억어린 20장의 사진을 첨부해서 출간한 책이다.
이 문집을 읽어보면 ‘신앙과 애국’ ‘글씨와 사랑’ ‘인생과 성찰’ ‘환희와 회한’ 등을 광범위하게 토로하고 있는데 「종착역까지」「붓과 꽃 열매」등 그 제목의 설정에서 이미 그 인간의 도량과 학문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그 내용에서 기독교 사상은 물론 유불선을 넘나드는 보편성이 드러나며 서예가로서의 애환과 통절 그리고 끝내 멈추거나 쉬지 않는 구로자와 같은 일념이 읽어진다. 또 나는 누구인가라는 성찰 속에 자연과 인간 가족 나아가 국가를 사랑하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끝으로 『原谷書文二集』은 수필 부분에서 「십자가와 혈서」「宗敎와 書藝」등 一集에서 몇 편을 수록하고 다시 새로 쓴 수필 「난향처럼 인생을 살자」등 50여편을 첨가하였다. 아울러 「民主化와 書藝」「활발한 協會展」등 18편의 평론과 「나의 생애」를 140쪽에 게재하고 있다. 그리고 앞부분에 1970년 이후 작품과 초서 천자문, 그리고 그 동안 수상한 상장, 또 130여장의 빛바랜 사진을 싣고 있다.
원곡은 서문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回想 回顧 追憶은 弱者의 잠꼬대요 나에게는 前進 勇猛 又日新 創作에만 힘 쓸 따름이다. 나의 전 생애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 할을 다 하였는가 확답하기 심히 어렵다… 나 나름대로 一絲不亂 눈물 피 땀 내 몸을 쥐어짬으로 생활을 계속하여 왔다. 내 땀에는 그 많은 서예작품 또 는 많은 원고를 써보려고 分秒를 다투어 노력해 온 결과가 오늘의 『원곡서문 2집』을 출간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수명을 허락하시는 한 3ㆍ4ㆍ5집을 계 속 할 각오이다.”

노익장이라고 했던가! 75세 때의 강변이다. 그러나 이후 3ㆍ4ㆍ5집은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만년의 생각과 삶의 모습을 접해 볼 수 없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행여 그 이후의 원고가 가족이나 재단에 남겨져 있으면 하는 바램 뿐 이지만 원곡문화재단 金聖在이사장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종로구 적선동에 있던 50년 産室이 도시 개발에 의하여 헐린 것에 대하여 상심이 매우 컸다고 하며 그 이후에 전 같이 문장을 쓰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상의 4권의 책을 남긴 것만도 선생의 예술과 학덕과 인품을 그대로 접할 수 있기에는 충분하다고 하겠으며 아울러 감사한 마음과 함께 매우 다행스럽게 여기는 바이다.
당시 원곡과 거의 동년배들 중에는 신구학문을 겸비한 서예가들이 거의 다였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원곡만이 역작의 저서들을 남긴 것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선지자로서 서가의 본분을 지키고자 하는 투철한 사명감과 충심으로부터 나온 結晶이라는 점에 재삼재사 깊은 존경과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표할 뿐이다.
김충현이 “원곡은 서예가일 뿐 아니라 사상가 애국자로서 그 廣博한 學識을 兼하여 그의 文章에는 深奧한 志意가 포함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이 책자들의 가치를 높이 산 志意가 담겨있으며 아울러 원곡의 학문의 깊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